데이터의 시대, 디자이너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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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두 명이 웹사이트 상품 구매버튼의 색상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하고 있다. 디자이너 A는 블루를 사용하길 원하고 디자이너 B는 레드를 사용하길 원한다.

과거였다면 이런 토론은 색채 이론, 색채 심리학, 브랜딩과 컬러 트렌드 등 다양한 이론과 가설이 오고 가며 정답이 아닌 합의점을 찾아내는 설득의 과정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토론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버튼 색상 논쟁을 종결짓는 건 이제 이론도, 유행도 아닌 숫자다. 테스트의 간소화와 일반화로 인해 구매 버튼 색상의 차이가 발생시키는 전환율과 매출의 차이는 정확히 측정 가능해졌고, 그 시점부터 실무 논의에서 측정이 어려운 이론이나 가설을 들먹이기란 굉장히 머쓱해졌다. 적어도 컬러는 철저히 브랜드의 영역이자 디자이너의 결정 권한이라 믿었던 통념은, 컬러 역시도 데이터에 기반해 최선의 답을 찾을 수 있는 ‘해결 가능한 문제’라는 인식으로 대체되고 있다.

머지않아 블루나 레드같은 후보색상을 고민할 필요도 없어질 것이다. 컴퓨터가 스스로 수많은 색의 조합을 끊임없이 테스트하며 문맥상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인 색상을 직접 결정할 테니 말이다.

와이어드의 크리스 앤더슨이 2008년에 썼던 ‘이론의 종말(The End of Theory)’이 당시에는 과학계나 일부 최전선의 테크 기업에 국한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면, 지금은 일반 기업들의 업무 프로세스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 변화로 와 닿는다. 가설을 세우고 변수를 줄여가며 정답에 가까이 다가가던 과정에서 필요했던 직관적 해석의 노력은 이제 더 많은 데이터를 얻어내기 위한 기술로 대체되었고, 빅데이터가 끊임없이 던져주는 수많은 상관관계 앞에 우리의 직관은 하염없이 작아 보이기만 할 뿐이다.

디자인 최종 결정권자: 데이터

데이터 과학이 굉장히 효과적이면서도 한편으로 위험한 이유는, 원인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어도 충분히 유용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상품 구매 페이지에서 원형 버튼이 사각형 버튼보다 25% 높은 전환율을 보여준다면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어떤 조형 심리적 요소가 그 25%의 차이를 만들어냈을지 분석하고 해석하는 시간은 스케줄에 좀처럼 배정되지 않는다. 데이터 드리븐 디자인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디자이너의 직관이 아닌 숫자이며, 주관적 의견이나 해석은 테스트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샌프란시스코의 스타트업 The Grid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AI Website Design System이라는 디자이너들이 섬뜩해 할만한 문구를 내세우며 등장했다. 텍스트, 이미지, 비디오 등의 컨텐츠를 던져놓으면 시스템이 이를 분석하고 적합한 레이아웃과 타이포그래피, 컬러 등을 결정해 스스로 웹사이트를 디자인한다는 것이 서비스의 기본 컨셉이다. 사이트의 전체적인 톤을 맞추기 위해 이미지들의 톤 보정까지 시스템이 알아서 처리한다고 하니 웹디자인 프로세스에서 디자이너의 필요성을 완전히 없애려는 것 같다. 이 서비스가 계획대로 진전된다면 시스템이 스스로 여러 안을 만들어서 지속적으로 스플릿 테스트를 진행하고 결과를 반영하는 등의 수준까지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The Grid는 거창한 등장만큼 만족할 수준의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지는 못한듯하다. AI라는 포장지를 씌워놓은 스크립트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비난도 들린다. 다만 The Grid의 등장으로 인해 디자이너들이 느꼈을 불안감의 근원은 디지털 디자인 프로세스의 발전이 인간보다는 컴퓨터에게 더 많은 결정권을 쥐여주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디자이너의 역할 중 대부분을 컴퓨터가 대신하는 형태의 프로세스가 제시되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해본다.

“보다 더 정교해진 기계의 지속적인 진보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며 새로운 기술 발전은 노동자의 작업을 더욱더 기계적인 작업으로 변혁하여 어느 시점에 이르면 기계가 인간의 자리를 대체할 것이다.”
– 칼 마르크스

컴퓨터에게 아름다움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할까?

The Grid의 디자이너 Jon Gold는 수개월 전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최근 로봇에게 타이포그래피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컴퓨터가 시각적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해 예술적 의미의 아름다움과 달리 디자인에서의 아름다움은 일련의 규칙에 기반한 것이며, 규칙이 존재한다면 컴퓨터도 배울 수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실무에서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의 기본 규칙을 몰라서 고생하는 것이 아니듯, 규칙을 안다고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컴퓨터는 규칙을 습득하는 방식보다는 방대한 데이터에 기반한 머신러닝을 통해 인간이 이해하고 있는 ‘시각적 아름다움’이 구조적으로 어떤 것이지 조금씩 알아나갈 가능성이 크다.

“머신 러닝은 향후 5년 안에 컴퓨터가 인간과 마찬가지로 미학적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할 것입니다.”
– 마티아스 듀아트, 구글 디자인 부사장

기계번역의 역사는 이를 위한 좋은 참고사례다. 기계번역 초창기에 컴퓨터는 수많은 언어의 문법적 규칙과 존재하는 대부분의 단어를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엉터리 문장들을 만들어냈다. 단어와 문법에 기반한 번역은 인간뿐 아니라 컴퓨터에게도 좋은 학습방법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기계번역의 품질이 급격히 개선되기 시작한 것은 머신러닝 방식이 도입된 시점이었다. 방대한 번역 데이터를 흡수하며 마치 어린아이가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번역의 정확도를 조금씩 높여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영어와 스페인어는 스카이프를 통해 동시통역이 가능한 수준까지 발전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컴퓨터가 시각적 아름다움을 결정짓는 미묘한 차이를 수많은 데이터 분석과 비교를 통해 서서히 알아나간다면, 아름다움에 대한 견해가 인간과 다를 수는 있어도 어느 시점부터 최소한 인간이 보기에 좋은 수준의 시각적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단계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데이터 맹신과 숫자 만능론

새로운 툴이나 방법론의 등장이 설레는 건 기존의 비효율과 문제점이 개선되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디터 람스의 말처럼 완벽한 해결책이란 없으며, 우리가 정답에 가까이 왔다고 생각할수록 새로운 문제점들이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과학이 통치하는 세상에서 숫자는 신과 같은 존재다. 사회의 복잡성이 인간의 인지능력을 넘어선 순간부터 숫자는 논쟁을 종결짓고 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맡아왔다. 언어는 모호하지만 숫자는 절대적이다. 숫자에 대한 깊은 신뢰는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와, 득표수에 따라 국가 지도자를 선출하는 민주주의를 가능케 했던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숫자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는 종종 숫자가 언제나 객관적이고 절대적이라는 착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데이터 드리븐 디자인에서 가장 흔한 실수는 양적/질적 데이터와 객관적/주관적 데이터에 대한 혼동이다. 간단히 말하면 숫자 정보로 치환 된 주관적 의견을 객관적 데이터로 신뢰하는 오류다. Dr. Philip Hodgson는 그의 글 Usability Test Data에서 ‘Subjective and objective data’(주관적이고 객관적인 데이터)에 대해 명료하게 정리했다.

– 컴퓨터를 가지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내가 ‘예’라고 대답한다면, 이는 숫자가 아니므로 질적 데이터이지만, 나의 주관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객관적 데이터다. 그러므로 이 경우 나의 대답은 질적/객관적 데이터다.

– 컴퓨터의 가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라는 질문에 ‘내 생각엔 너무 비싼 것 같습니다.’라는 대답은 질적/주관적 데이터다.

– 컴퓨터 중앙처리장치의 속도가 어떻게 됩니까? 라는 질문에 ‘2GHz’라는 대답은 양적/객관적 데이터다.

– 당신의 컴퓨터는 얼마나 사용하기 쉬운 편입니까? 1부터 10중 하나의 숫자로 답해주세요. 라는 질문에 ‘7’이라는 대답은 양적/주관적 데이터다.

사람들은 종종 양적(Quantitative) 데이터와 객관적 데이터, 그리고 질적(Qualitative) 데이터와 주관적 데이터를 각각 동의어로 간주하곤 하지만, 위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양적, 질적 데이터는 각각 주관적, 객관적일 수 있다.

실무에서 얻는 리서치나 테스트 데이터는 대부분 숫자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위의 예시로 보듯 숫자 데이터는 주관적일 수 있다. 적지 않은 경우 우리가 의미하는 객관적 데이터란 그저 수많은 주관적 데이터를 한곳에 모아두고 멀리서 바라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의 직관이나 주관이 마치 신성한 데이터에 스며들어선 안 될 오염 물질인 듯 여겨서는 곤란하다.

데이터 예찬론의 위험성은 그것이 데이터 맹신으로 변질되기 쉽다는 점에 있다. 테스트는 고민을 떠넘기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며, 데이터는 직관을 비웃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디자이너가 비록 단기적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없을지라도 ‘왜’라는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왜 그런 테스트 결과가 나왔는지, 왜 사람들이 B안을 A안보다 더 선호했는지, 왜 의도하지 않은 사용패턴이 발견되었는지 등 말이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사색과 토의가 비록 컴퓨터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 특유의 비생산적 행위일지 모르겠으나, 호기심은 인간이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이고, 데이터의 상관관계가 밝혀내지 못하는 혁신적 발상은 언제나 그런 인지적 결핍을 메우기 위한 과정에서 탄생한다고 믿는다.

우리의 작업 프로세스는 계속해서 더 높은 효율성을 추구하고 그 안에서 데이터 과학의 중요도는 점점 더 높아질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진화와 같아서 누군가의 의지로 멈추거나 되돌릴 수 없다. 그러므로 변화되는 작업 환경에서 우리의 논의는 데이터 과학과 대립각을 세운 채 감성과 아름다움의 중요성을 주창하는 방향이 아닌, 그것들의 중요성을 입증하기 위해 어떻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 링크:

Andy Warhol – Ai Weiwei Exhibition

On the last day of 2015, I visited NGV International Museum for the first time. The exhibition was advertised everywhere in Melbourne so I could hardly miss it.

I don’t know much about Andy Warhol and actually it was the first time I learned about Ai Weiwei and his work. But I didn’t try googling about them too much beforehand; I feel that I would’t comprehend contemporary art very well whether or not I learned about it.

However, I found Andy Warhol’s work quite interesting. I think his works are visually appealing as he used to be a professional advertisement illustrator. In my view, there’s no harm in beauty although I know that aesthetics is not an important point of modern art. Also, he clearly understood how the industry was changing and how it brought about a change in the way we think and live; he cleverly expressed that notion into the form of artwork.

Ai Weiwei is also an interesting artist. All his work send a very clear message about his principles and values. The scale of some of his work is very impressive and reminds me of Nam Jun Paik’s works. I’m definitely going to learn more about him.

Andy Warhol - Ai Weiwei Andy Warhol - Ai Weiwei Andy Warhol - Ai Weiwei Andy Warhol - Ai Weiwei Andy Warhol - Ai Weiwei Andy Warhol - Ai Weiwei Andy Warhol - Ai Weiwei Andy Warhol - Ai Weiwei Andy Warhol - Ai Weiwei Andy Warhol - Ai Weiwei Andy Warhol - Ai Weiwei Andy Warhol - Ai Weiwei Andy Warhol - Ai WeiWei Andy Warhol - Ai WeiWei Andy Warhol - Ai Weiwei Andy Warhol - Ai Weiwei Andy Warhol - Ai Weiwei Andy Warhol - Ai Weiwei Andy Warhol - Ai Weiwei Andy Warhol - Ai Weiwei Andy Warhol - Ai Weiwei

디터 람스 ACCD 졸업식 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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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Dieter Rams Urges Graduates Toward a Responsible Design Ethos – April 22, 2013
출처: http://blogs.artcenter.edu/dottedline/2013/04/22/dieter-rams-graduation-speech/
번역: 전형탁

더 인간적인 환경을 위한 디자인

지난 60여 년간 저의 디자인 철학은 변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이것이 옳다고 믿고 있습니다.

제품의 중심엔 언제나 인간이 있지만, 디자인은 사회의 변화와 함께하고, 그것은 디자이너의 책임 변화로 이어집니다.

오늘날 디자인은 ‘조금 다른 것’ 또는 ‘눈에 띄도록 가공된 것’의 의미로 자주 오용됩니다.

디자인과 성장 지향적 소비사회와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디자인의 의미가 더 이상 퇴색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공존하며 개선해가는 과정을 대변했으면 합니다.

삶의 터전을 보존하려는 것은 우리의 열망입니다. 세상을 가득 채운 물리적, 시각적 공해는 시급한 대책을 필요로 합니다. 좋은 디자인이란 가능한 최소한의 디자인입니다. 우리는 순수함과 간결함으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하며, 이것은 우리를 탁월함으로 이끌어줄 열쇠입니다.

저의 신조인 ‘적지만 더 나음(Less But Better)’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항상 새로운 제품이 필요할까요? 산적해 있는 경제, 환경 문제들 앞에서 디자인은 근본적 의미변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디자인은 표면적, 치장적 형태를 버리고 소비 지향적 사회를 넘어서는 대안을 고려해야 합니다.

혁신적인, 유용한, 심미적인, 직관적인, 정직한, 절제된, 견고한, 세심한, 환경친화적인, 그리고 최소한의 디자인은 제가 30여 년 전 정립했고 여전히 변치 않은 디자인의 10가지 원칙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을 모두 충족하는 것만으로 좋은 디자인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좋은 디자인은 언제나 명확하며, 그것이 속한 환경 전반을 개선하고, 또한 미래를 가늠하는 척도가 됩니다.

저는 실무에 몸담았던 기간 동안 운 좋게도 혁신적이고, 책임감 있고, 도전의 위험도 기꺼이 감수하는 훌륭한 기업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 저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같은 비전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과도하게 시선을 사로잡지 않으면서도 훌륭한 사용 경험과 지속될 수 있는 아름다움을 통해 스스로 설득력을 갖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내일의 세상은 오늘의 디자인학도인 여러분이 만들 것입니다. 이는 커다란 기회이자 과제이며, 책임감을 의미합니다.

지난 50여 년간 저는 제품 디자이너와 대학교수로서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갈망했습니다. 디자이너는 언제나 세상을 개선하고자 하는 야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결코 스스로를 개선하지 않으니까요.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환경보호와 잘못된 소비형태의 개선입니다. 미래의 디자이너에게는 더 큰 과제가 주어질 것입니다. 더는 디자이너가 개별 제품만을 고려해서는 부족하며, 새로운 행동방식과 문화적 가치, 그리고 문화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독단성과 자위성을 초월하는 디자인 정신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디자인의 핵심이 되는 다섯 가지 측면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 기능의 차원: 유용성이 대체될 수 있을까?

일을 시작한 이후 줄곧 저는 제품의 기능과 유용성에 집중을 해왔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제품 자체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디자인의 과정은 점점 더 정교해져 왔고, 새로운 기술들이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제작 기술과 재질의 잠재력을 활용하는 데 점점 능숙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완벽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우리가 정답에 가까이 왔다고 생각할수록 더 많은 문제가 모습을 드러내곤 합니다.

한편 ‘기능’의 영역은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단일제품의 기능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만드는 제품들이 반드시 심리적, 생태학적, 사회적 이득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기능’은 분명 더 넓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지만, 여전히 대체될 수 없는 영역입니다.

2. 커뮤니케이션의 차원: 디자인은 무엇을 전달해야 하는가?

디자인 프로세스는 제품의 목적, 기본적 구조, 사용법, 기능, 가치 등 온갖 정보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이기도 합니다.

전달하려는 정보를 가장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만드는 과정 역시 기능적 측면의 일부입니다. 결국 이해하기 쉬운 것이 사용하기도 쉽기 때문이죠.

그런데 제품의 이해도를 높이는 과정은 전보다 더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제품이 혁신적인 기술과 기능으로 무장하고 있고, 개별 제품은 고유의 영역을 확장해서라도 더 많은 기능을 갖추도록 기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디자인을 이용해 실제보다 더 큰 성공의 착시를 만들어내는 일은 훨씬 쉬워졌습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이러한 디자인의 부정한 잠재력을 악용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기업이 고객을 의도적으로 기만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득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허용돼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3. 심미적 차원: 우리는 혼란스러운 세상을 어디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언제나 그래 왔듯 저에게 아름다운 디자인의 환경이란 충분히 절제되고 단순해서 눈치채기 어려운 것을 의미합니다.

그에 더불어 누구나 소속되고 싶어 하고, 사용의 기회마저 반가울 만큼 매력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짧은 유행이나 과거 회귀와 거리를 둔다는 점에서 현대적이어야 합니다.

제품에 이런 아름다움이 스며들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차분하고, 절제되고, 사실적인 성격은 결핍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것 자체가 디자인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 역시 아닙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생산되는 제품의 홍수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기에 결국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디자인 과제란, 피할 수 없는 세상의 어지러움을 최소화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는 다음 주제로 연결됩니다:

4. 시간적 차원: 우리는 얼마나 많은 낭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

‘의도적 노후화’는 아주 불쾌한 개념입니다. 이는 존재하는 제품의 가치를 떨어뜨릴 목적으로 새 제품을 출시함으로써, 소비자가 제품의 수명이 다하기도 전에 새것으로 교체하게끔 유도하는 전략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분명 자원과 에너지의 낭비입니다.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제품을 만드는 것은 진정으로 요구되는 제품을 만들기보다 훨씬 쉽기 마련입니다. 이렇듯 디자인은 종종 혁신의 허상을 만들어내는 도구로 오용되곤 합니다.

디자인을 통해 충분한 내구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측면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내구성이란 디자인만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뛰어난 아이디어, 성공적 공학기술, 높은 수준의 제작 과정이 디자인과 함께 상호작용할 때 충분한 내구력을 갖춘 제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디자인은 기업 전체의 노력과 함께할 때만 성공적일 수 있습니다.

5. 생태학적 차원

오늘의 세상을 만들어오는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생존 문제가 달린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시도들을 해왔습니다.

인류, 대량 생산, 넘쳐나는 제품들이 자연환경에 큰 위협이라는 사실에는 모두 동의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공산품의 생산 체계가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해져야 한다는 사실에도 모두 동의 하리라 봅니다.

하지만 환경적 의미에서 지속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은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어려운 과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생각하는 지속가능성의 공식은 ‘적지만 더 낫게(Less but better)’입니다. 훨씬 더 적게, 하지만 훨씬 더 낫게 말이죠.

사람들이 사고 싶어 하도록 제품을 치장하는 과정에 디자인은 일조해왔고, 이는 결국 새로운 제품의 범람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은 반대로 이 범람을 막아내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드는 환경적 비용은 결코 적지 않지만, 정작 제품의 사용도는 그에 비해 낮습니다. 제품은 멋스럽게 나이 들지도, 오래도록 사용되지도 않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도 못합니다. 결국 이런 제품들은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신상품들에 떠밀려 쓰레기장에 쌓입니다.

우리가 1년, 5년, 혹은 10년 동안 같은 제품을 사용한다면 그것만으로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자원을 낭비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제조사의 제품 사용을 줄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유행에 따라 짧게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제품의 생산 역시 줄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을 더 쉽고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제품입니다.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지적 과정이며, 창의적 혁신과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려는 시도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제품을 갈아치우고 건물을 허물기 전에 다시금 진보적이고 단순하게 디자인할 수 있을지 고려해야 할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 과정에서 기업과 기업가의 역할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고자 합니다.

저의 경우에 성공적인 프로젝트는 언제나 훌륭한 기업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했습니다. 20세기 초반에는 AEG의 Peter Behrens와 Emil Rathenau가 있었고, 1950년대에 디자인을 처음 시작하던 시절엔 Nizzoli의 Adriano Olivetti, Mario Bellini, Ettore Sottsass가 있었습니다. 1955년에는 운 좋게도 Braun 형제와 함께 일할 수 있었고 1957년에는 Niels Wiese Vitsoe와 함께 협업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 이 말은 스티브 잡스가 자주 사용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격언입니다. 그리고 애플은 이러한 디자인 철학을 훌륭히 실현해낸 기업이기도 합니다.

디자이너와 기업가가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감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제품 간 경쟁에서 벗어나 소통과 사용성, 지속가능성의 경쟁으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소비자는 브랜드 뒤에 감춰진 기업의 진정한 철학과 미학에 대해 더 민감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기업의 신용도가 미디어를 통해 의도적으로 생산된 메시지가 아닌, 실제적 기업의 컨텐츠로 평가되리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기업의 전략과 방향이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반한다면, 기업은 스스로 속한 사회와의 위험한 가치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분명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제 훌륭한 사용자 경험은 제품의 실용적, 환경적 수준이 결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보고 싶은 변화가 있다면 직접 그 변화가 되어라”.
우리 스스로의 태도를 변화함으로써 시작합시다.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Simple Support Box

ssb-header

Technical inquiries are usually too vague, so it’s very difficult to figure out the exact issue and cause from the users’ reports. Many times they only tell us that ‘Something doesn’t work’. So our support team has to ask them many questions to figure out where the issue lies.

I made this simple support box to improve the customer support process by getting more information from them without asking them.

When users say that they can’t download a pdf or can’t play the audio, the first thing we want to know is which page they’re on. So we need the URL where the issue is. I quickly took a look at WordPress Codex and found out I can get that information by using home_url().

<?php  
  global $wp;
  $current_url = home_url(add_query_arg(array(),$wp->request));
?>

Other information that might be helpful would be the user’s OS and web browser. Luckily, we use Memberium, and it has the shortcode that grabs that information. So I put the shortcode inside of a hidden field to auto-populate the data. The same way I get their ID number, name, and email without asking them to type them. So basically the input field looks very simple, and the users only need to type in the question, but we get their ID number, name, email, device, OS, web browser and URL. Structurally it’s just a div of Gravity Forms inside of footer.php (because it should be everywhere). I used jQuery fadeToggle to fade in and out the div when the button is clicked.

$('#quick-support').click(function(){
   $('#quick-support-modal').fadeToggle('fast');
});

Since we launched this feature we’re getting more inquiries than before, probably because it’s everywhere and very easy to access. And now it’s much easier and faster for me to figure out the issue and respond to it.

자본과 탐욕

steamtrain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축적하기 위한 노력은 탈빈곤을 향한 몸부림 이상으로 처절하다.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시대에서 인류의 눈부신 발전을 이끌었던 원동력은 개인과 집단의 탐욕이었다. 탐욕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것과 더 나은 삶을 갈구하도록 부추긴다. 성취의 만족감과 곧이어 나타날 다음 목표와의 간격은 점점 좁아진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행복은 그저 수많은 자극 중 하나로 취급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탐욕이 단순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졌다고 볼 수는 없다. 아마도 탐욕은 인류의 자랑거리인 민주주의가 마련해 준 ‘가능성’이라는 토양 위에서 자본주의가 하늘에 수놓은 숫자들을 바라보며 무럭무럭 자라났을 것이다. 계급의 장벽은 모두 걷혔고,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가격이 책정되었다. 누구나 돈을 벌 수 있고, 돈이면 뭐든 살 수 있다.

기대를 가로막던 장벽이 전부 걷혀버린 벌판에서 우리는 습관적으로 남의 삶을 쳐다보며 살아간다. 끊임없는 비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좌절을 만들고 그 안에서 탐욕은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난다. 우리는 탐욕에 좋은 이름들을 붙여 죄책감을 완화하고, 만족을 모르는 삶을 동경하며 매일 자신을 채찍질한다. 우리 안의 탐욕이 너무 커져 숨을 쉬기조차 힘들어지기 전까지,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죽음이 우리의 기대와 희망을 산산이 부수기 전까지.

시장논리는 이제 인간의 삶 전반에 적용되었다. 서로 비교될 수 없기에 풍요로웠던 많은 가치가 돈이라는 동일 선상에 강제로 올려져 벌거벗겨졌다. 세상을 가득 메운 숫자들은 이제 교육, 직업, 결혼 등 우리 삶의 중요하고 복잡한 결정들을 대신 내려준다. 이제 어린이들은 시인이나 화가를 꿈꾸는 것이 부모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삶 속에 나타나는 좋은 것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는 그것을 오염시킬 수 있다.’
– 마이클 샌델

자본과 탐욕이 지배한 사회에서 도덕과 철학이 존중받기는 어렵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그 어느 때보다 귀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우리가 무심코 놓쳐버린 수많은 가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삶은 어느덧 탐욕이라는 연료를 먹고 더 강한 자극을 찾아 차체가 부서질 때까지 달리는 기차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후회가 밀려오면 그저 철로가 거기 놓여있었기에 달려왔을 뿐이라고 스스로 위안해야 하는 그런 안타까운 삶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