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탐욕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축적하기 위한 노력은 탈빈곤을 향한 몸부림 이상으로 처절하다.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시대에서 인류의 눈부신 발전을 이끌었던 원동력은 개인과 집단의 탐욕이었다. 탐욕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것과 더 나은 삶을 갈구하도록 부추긴다. 성취의 만족감과 곧이어 나타날 다음 목표와의 간격은 점점 좁아진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행복은 그저 수많은 자극 중 하나로 취급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탐욕이 단순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졌다고 볼 수는 없다. 아마도 탐욕은 인류의 자랑거리인 민주주의가 마련해 준 ‘가능성’이라는 토양 위에서 자본주의가 하늘에 수놓은 숫자들을 바라보며 무럭무럭 자라났을 것이다. 계급의 장벽은 모두 걷혔고,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가격이 책정되었다. 누구나 돈을 벌 수 있고, 돈이면 뭐든 살 수 있다.

기대를 가로막던 장벽이 전부 걷혀버린 벌판에서 우리는 습관적으로 남의 삶을 쳐다보며 살아간다. 끊임없는 비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좌절을 만들고 그 안에서 탐욕은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난다. 우리는 탐욕에 좋은 이름들을 붙여 죄책감을 완화하고, 만족을 모르는 삶을 동경하며 매일 자신을 채찍질한다. 우리 안의 탐욕이 너무 커져 숨을 쉬기조차 힘들어지기 전까지,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죽음이 우리의 기대와 희망을 산산이 부수기 전까지.

시장논리는 이제 인간의 삶 전반에 적용되었다. 서로 비교될 수 없기에 풍요로웠던 많은 가치가 돈이라는 동일 선상에 강제로 올려져 벌거벗겨졌다. 세상을 가득 메운 숫자들은 이제 교육, 직업, 결혼 등 우리 삶의 중요하고 복잡한 결정들을 대신 내려준다. 이제 어린이들은 시인이나 화가를 꿈꾸는 것이 부모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삶 속에 나타나는 좋은 것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는 그것을 오염시킬 수 있다.’
– 마이클 샌델

자본과 탐욕이 지배한 사회에서 도덕과 철학이 존중받기는 어렵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그 어느 때보다 귀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우리가 무심코 놓쳐버린 수많은 가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삶은 어느덧 탐욕이라는 연료를 먹고 더 강한 자극을 찾아 차체가 부서질 때까지 달리는 기차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후회가 밀려오면 그저 철로가 거기 놓여있었기에 달려왔을 뿐이라고 스스로 위안해야 하는 그런 안타까운 삶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