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터 람스 ACCD 졸업식 축사

더 인간적인 환경을 위한 디자인

지난 60여 년간 저의 디자인 철학은 변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이것이 옳다고 믿고 있습니다.

제품의 중심엔 언제나 인간이 있지만, 디자인은 사회의 변화와 함께하고, 그것은 디자이너의 책임 변화로 이어집니다.

오늘날 디자인은 ‘조금 다른 것’ 또는 ‘눈에 띄도록 가공된 것’의 의미로 자주 오용됩니다.

디자인과 성장 지향적 소비사회와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디자인의 의미가 더 이상 퇴색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공존하며 개선해가는 과정을 대변했으면 합니다.

삶의 터전을 보존하려는 것은 우리의 열망입니다. 세상을 가득 채운 물리적, 시각적 공해는 시급한 대책을 필요로 합니다. 좋은 디자인이란 가능한 최소한의 디자인입니다. 우리는 순수함과 간결함으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하며, 이것은 우리를 탁월함으로 이끌어줄 열쇠입니다.

저의 신조인 ‘적지만 더 나음(Less But Better)’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항상 새로운 제품이 필요할까요? 산적해 있는 경제, 환경 문제들 앞에서 디자인은 근본적 의미변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디자인은 표면적, 치장적 형태를 버리고 소비 지향적 사회를 넘어서는 대안을 고려해야 합니다.

혁신적인, 유용한, 심미적인, 직관적인, 정직한, 절제된, 견고한, 세심한, 환경친화적인, 그리고 최소한의 디자인은 제가 30여 년 전 정립했고 여전히 변치 않은 디자인의 10가지 원칙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을 모두 충족하는 것만으로 좋은 디자인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좋은 디자인은 언제나 명확하며, 그것이 속한 환경 전반을 개선하고, 또한 미래를 가늠하는 척도가 됩니다.

저는 실무에 몸담았던 기간 동안 운 좋게도 혁신적이고, 책임감 있고, 도전의 위험도 기꺼이 감수하는 훌륭한 기업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 저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같은 비전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과도하게 시선을 사로잡지 않으면서도 훌륭한 사용 경험과 지속될 수 있는 아름다움을 통해 스스로 설득력을 갖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내일의 세상은 오늘의 디자인학도인 여러분이 만들 것입니다. 이는 커다란 기회이자 과제이며, 책임감을 의미합니다.

지난 50여 년간 저는 제품 디자이너와 대학교수로서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갈망했습니다. 디자이너는 언제나 세상을 개선하고자 하는 야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결코 스스로를 개선하지 않으니까요.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환경보호와 잘못된 소비형태의 개선입니다. 미래의 디자이너에게는 더 큰 과제가 주어질 것입니다. 더는 디자이너가 개별 제품만을 고려해서는 부족하며, 새로운 행동방식과 문화적 가치, 그리고 문화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독단성과 자위성을 초월하는 디자인 정신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디자인의 핵심이 되는 다섯 가지 측면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 기능의 차원: 유용성이 대체될 수 있을까?

일을 시작한 이후 줄곧 저는 제품의 기능과 유용성에 집중을 해왔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제품 자체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디자인의 과정은 점점 더 정교해져 왔고, 새로운 기술들이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제작 기술과 재질의 잠재력을 활용하는 데 점점 능숙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완벽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우리가 정답에 가까이 왔다고 생각할수록 더 많은 문제가 모습을 드러내곤 합니다.

한편 ‘기능’의 영역은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단일제품의 기능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만드는 제품들이 반드시 심리적, 생태학적, 사회적 이득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기능’은 분명 더 넓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지만, 여전히 대체될 수 없는 영역입니다.

2. 커뮤니케이션의 차원: 디자인은 무엇을 전달해야 하는가?

디자인 프로세스는 제품의 목적, 기본적 구조, 사용법, 기능, 가치 등 온갖 정보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이기도 합니다.

전달하려는 정보를 가장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만드는 과정 역시 기능적 측면의 일부입니다. 결국 이해하기 쉬운 것이 사용하기도 쉽기 때문이죠.

그런데 제품의 이해도를 높이는 과정은 전보다 더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제품이 혁신적인 기술과 기능으로 무장하고 있고, 개별 제품은 고유의 영역을 확장해서라도 더 많은 기능을 갖추도록 기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디자인을 이용해 실제보다 더 큰 성공의 착시를 만들어내는 일은 훨씬 쉬워졌습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이러한 디자인의 부정한 잠재력을 악용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기업이 고객을 의도적으로 기만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득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허용돼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3. 심미적 차원: 우리는 혼란스러운 세상을 어디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언제나 그래 왔듯 저에게 아름다운 디자인의 환경이란 충분히 절제되고 단순해서 눈치채기 어려운 것을 의미합니다.

그에 더불어 누구나 소속되고 싶어 하고, 사용의 기회마저 반가울 만큼 매력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짧은 유행이나 과거 회귀와 거리를 둔다는 점에서 현대적이어야 합니다.

제품에 이런 아름다움이 스며들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차분하고, 절제되고, 사실적인 성격은 결핍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것 자체가 디자인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 역시 아닙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생산되는 제품의 홍수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기에 결국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디자인 과제란, 피할 수 없는 세상의 어지러움을 최소화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는 다음 주제로 연결됩니다:

4. 시간적 차원: 우리는 얼마나 많은 낭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

‘의도적 노후화’는 아주 불쾌한 개념입니다. 이는 존재하는 제품의 가치를 떨어뜨릴 목적으로 새 제품을 출시함으로써, 소비자가 제품의 수명이 다하기도 전에 새것으로 교체하게끔 유도하는 전략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분명 자원과 에너지의 낭비입니다.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제품을 만드는 것은 진정으로 요구되는 제품을 만들기보다 훨씬 쉽기 마련입니다. 이렇듯 디자인은 종종 혁신의 허상을 만들어내는 도구로 오용되곤 합니다.

디자인을 통해 충분한 내구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측면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내구성이란 디자인만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뛰어난 아이디어, 성공적 공학기술, 높은 수준의 제작 과정이 디자인과 함께 상호작용할 때 충분한 내구력을 갖춘 제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디자인은 기업 전체의 노력과 함께할 때만 성공적일 수 있습니다.

5. 생태학적 차원

오늘의 세상을 만들어오는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생존 문제가 달린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시도들을 해왔습니다.

인류, 대량 생산, 넘쳐나는 제품들이 자연환경에 큰 위협이라는 사실에는 모두 동의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공산품의 생산 체계가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해져야 한다는 사실에도 모두 동의 하리라 봅니다.

하지만 환경적 의미에서 지속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은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어려운 과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생각하는 지속가능성의 공식은 ‘적지만 더 낫게(Less but better)’입니다. 훨씬 더 적게, 하지만 훨씬 더 낫게 말이죠.

사람들이 사고 싶어 하도록 제품을 치장하는 과정에 디자인은 일조해왔고, 이는 결국 새로운 제품의 범람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은 반대로 이 범람을 막아내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드는 환경적 비용은 결코 적지 않지만, 정작 제품의 사용도는 그에 비해 낮습니다. 제품은 멋스럽게 나이 들지도, 오래도록 사용되지도 않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도 못합니다. 결국 이런 제품들은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신상품들에 떠밀려 쓰레기장에 쌓입니다.

우리가 1년, 5년, 혹은 10년 동안 같은 제품을 사용한다면 그것만으로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자원을 낭비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제조사의 제품 사용을 줄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유행에 따라 짧게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제품의 생산 역시 줄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을 더 쉽고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제품입니다.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지적 과정이며, 창의적 혁신과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려는 시도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제품을 갈아치우고 건물을 허물기 전에 다시금 진보적이고 단순하게 디자인할 수 있을지 고려해야 할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 과정에서 기업과 기업가의 역할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고자 합니다.

저의 경우에 성공적인 프로젝트는 언제나 훌륭한 기업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했습니다. 20세기 초반에는 AEG의 Peter Behrens와 Emil Rathenau가 있었고, 1950년대에 디자인을 처음 시작하던 시절엔 Nizzoli의 Adriano Olivetti, Mario Bellini, Ettore Sottsass가 있었습니다. 1955년에는 운 좋게도 Braun 형제와 함께 일할 수 있었고 1957년에는 Niels Wiese Vitsoe와 함께 협업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 이 말은 스티브 잡스가 자주 사용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격언입니다. 그리고 애플은 이러한 디자인 철학을 훌륭히 실현해낸 기업이기도 합니다.

디자이너와 기업가가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감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제품 간 경쟁에서 벗어나 소통과 사용성, 지속가능성의 경쟁으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소비자는 브랜드 뒤에 감춰진 기업의 진정한 철학과 미학에 대해 더 민감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기업의 신용도가 미디어를 통해 의도적으로 생산된 메시지가 아닌, 실제적 기업의 컨텐츠로 평가되리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기업의 전략과 방향이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반한다면, 기업은 스스로 속한 사회와의 위험한 가치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분명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제 훌륭한 사용자 경험은 제품의 실용적, 환경적 수준이 결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보고 싶은 변화가 있다면 직접 그 변화가 되어라”.
우리 스스로의 태도를 변화함으로써 시작합시다.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