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문화의 영향을 받아야 할까? – 도널드 노먼

원문: Does Culture Matter for Product Design? by Don Norman – Jan 3, 2012
출처: http://www.jnd.org/dn.mss/does_culture_matter_.html
번역: 전형탁

Department-Store-Daejeon,-S.-Korea-Dec-2010-CORE77
사례1

이따금 외국을 방문할 때면, 나는 백화점에 들러 조리도구, 식기, 공구, 원예 등 그 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엿보곤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런 경우가 줄고 있다. 어디를 가도 매장들이 다 똑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압력밥솥은 일본과 중국에 기원을 두고 있으나, 오늘날엔 전 세계 조리도구 판매장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이탈리아, 독일, 미국의 가전제품들은 아시아에서도 판매되고, 반대로 아시아의 가전제품들은 이탈리아, 독일, 미국에서도 판매된다. 어떤 나라에서 디자인하고 어떤 나라에서 생산되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TV, 자동차, 핸드폰, 카메라, 냉장고 등은 아시아, 북미, 유럽을 막론하고 모두 똑같이 생겼다.

나는 세계 각국의 매장, 음식점, 길거리들이 담긴 사진들을 모으곤 한다. 그리고 가끔 이런 사진들을 내 강의에서 사용하기도 하는데, 주로 청중들에게 사진이 어디서 촬영 된걸지 추측해보도록 요구한다. 그들은 아주 자신 있게 대답하지만, 변함없이 틀린다. 사례1은 어떤 나라의 모습일까? 어디든 될 수 있다. 나는 저렇게 생긴 매장을 아시아, 유럽 또는 미국에서도 보았다. 심지어 사진에 포함된 언어조차도 별다른 의미를 줄 수 없다. 중국어, 영어, 불어, 한국어 또는 독일어로 되어있는 푯말들은 전 세계에서 널리 사용된다. 홍콩의 거리를 찍은 사진이 샌프란시스코, 뉴욕 또는 런던에서 찍은 사진보다 중국적인 느낌이 덜 할 때도 있고, 대다수 사람들은 홍콩에서 찍은 이 사진의 배경이 유럽이라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사례1은 과연 어디였을까? 대한민국 대전에 있는 한 백화점이다.

이런 다양성의 결핍은 디자인 교육에서도 드러난다. 세계의 유명 디자인 대학들의 커리큘럼이나 교육방식은 상당히 비슷하다. 국가 간의 교육방식의 차이가 심지어 개별 국가 내 교육기관 간의 차이보다도 작다. 핸드폰의 사례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의 핸드폰들은 크기나 모양 등이 제각각이었기 때문에, 일본 여학생들이 쓰는 핸드폰은 일본 직장인들이 쓰는 것과 달랐고, 그것은 서양의 직장인이나 금융종사자들이 좋아했던 블랙베리와는 또 달랐다. 기능이나 작동 방식의 측면에서는 서로 비슷했지만 말이다. 오늘날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모바일 환경에서는 이제 세 가지의 운영체제(Android, iOS, Windows)만이 주류로 사용된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사례를 보면, 언어를 제외하고는 개별의 문화에 대해 전혀 대응하지 않았음에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제품들은 문화로부터 독립적이다. 안드로이드, 윈도우 폰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유럽에서 구매하던 아시아에서 구매하던 그 지역의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문화는 과연 제품 디자인에 영향을 미칠까?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은 대량 생산의 시대(산업 디자인의 시대)에서 문화가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덜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암시한다. 이것이 사실일까? 만약 사실이라면 이것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의미일까, 아니면 부정적인 의미일까?

디자인적인 의미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나는 문화적 차이점은 디자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믿었었다. 문화에 관한 논점들이 특별히 흥미롭기도 했다. 물론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화적 차이점은 중요하고 흥미롭지만, 대부분의 경우 음식의 종류나 미적 스타일에 범주 내에서만 언급된다. 현시대의 제품들은 행동 중심적으로 디자인된다. 개별 행동들이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게 실현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전통적 행동방식은 개별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아왔지만, 오늘날의 사무실 환경, 제품 생산, 의사소통, 금융 계좌와 교통수단 등은 그것들을 위해 고안된 기술에 오히려 절대적인 지배를 받는다. 특히 금융 계좌의 경우 전 세계가 하나의 기준을 만들어 따르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로 우리의 행동방식 중 대다수는 자동차, 컴퓨터, 핸드폰, 기차, 비행기 등의 기술, 또는 다른 나라, 문화권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고자 하는 목적에 의해 결정된다. 기술이 행동방식을 결정하고 나면, 문화의 영향력은 미미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측들은 디자인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기술은 제품을 결정하고, 제품은 인간의 행동방식을 결정한다. 디자이너들은 인간중심 디자인(Human-Centered Design, HCD)을 자주 논하고, 이 방법론은 특정한 사람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디자인의 경우 분명히 중요하다. 하지만 다양한 나라의 수많은 사람이 사용할 제품을 디자인할 때 HCD는 적용되기 어렵다.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통신 기기, 자동차, 주방용품과 가정용품 등은 수백만 명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제작되고, 이 경우 HCD는 적용될 수 없다. 수많은 사람의 요구사항을 일일이 대응하는것이 과연 가능할까? 이에 대해 내가 제안해온 대안은 사람이 아닌 행동을 기준으로 삼는, 행동 중심 디자인(Activity-Centered Design, ACD)이다.

결국 기술은 인간의 행동방식을 결정하고, 인간의 행동방식은 다시 디자인을 결정한다. 그 근거로 디자인이 기술에 적합할 때, 사람들은 문화와 무관하게 이를 받아들인다. 좋은 예로 악기를 들 수 있을것 같다. 악기는 대부분 배우기가 어렵다. 일례로 바이올린의 경우 취하기 어렵고 고통스러울 수 있는 자세와 손동작을 요구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바이올린의 디자인을 탓하기는 커녕 열심히 배워서 훌륭하게 연주해낸다. 바이올린의 디자인은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한 기술에 맞춰져 있고, 그러므로 좋은 음악을 연주하기 위한 인간의 행위에도 들어맞는 것이다.

지역적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음식과 식습관은 문화별로 크게 다른 행동방식을 보여준다. 어떤 문화에서는 은 식기를 사용하고, 어떤 곳은 젓가락, 어떤 곳은 손이나 빵을 사용하기도 한다. 어떤 문화권은 식기의 장식적인 부분에 대해 많이 신경을 쓰는데, 예를 들면 동아시아권에서 소비되는 제품의 경우 장식이나 삽화들이 가미되어 있는 경우가 비교적 많다. 동일 제품이 전 세계에서 판매하기 위해 제작될 때에는 장식을 제외하곤 거의 같은 형태로 디자인 된다. 제품 간의 스타일 차이가 있을까? 그렇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차이도 있을까?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운전의 방식 역시도 지역적으로 차이가 있다. 안전을 중시하고 준법 적으로 운전하는 미국, 일본, 그리고 유럽의 일부 국가들부터, 상당히 자유분방하게 운전하는 (따라서 사고율도 높은) 일부 국가들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자동차가 런던에 있든 사이공에 있든 자동차의 기본적인 디자인이나 조작법은 여전히 동일하다.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는 방식 역시 문화별로 차이가 있어서, 비즈니스 트립을 가기 전에 해당 나라의 예절에 대한 기본적인 강의를 듣는 경우는 흔하다. 하지만 소통을 위해 사용되는 기술들은 동일하다. 전화기, 이메일, 문자, 명함, 그리고 점심 식사 등. 행동방식이 다를 뿐, 제품은 동일하다.

디자인 커뮤니티로부터의 의견

나는 이 글의 초안을 PhD-Design 커뮤니티의 이메일 토론 리스트에 올렸었고,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려 깊고 상세한 내용을 담은 의견들을 받았다.

나의 주장에 반대하는 내용은 대부분 디자인 리서치 커뮤니티로부터 온 것이었다. 이 커뮤니티는 인류학으로부터 크게 영향받고 있고,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 곳이었다. 그들의 주장은 사람들의 행동방식이 문화로부터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비슷한 제품을 사용하더라도 각자 다른 경험으로 발현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각자의 필요에 따라 같은 제품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만약 디자이너들이 기업들로 하여금 사람들이 그들의 제품을 실제로 어떻게 사용하고 있고 그것을 통해 얻으려는 바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에 집중하도록 설득해낸다면, 기업들은 소비자의 진정한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는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도 했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프로덕트들이 모두 비슷할지는 몰라도 문화적 감성에 의해 다양하게 조정된다는 것이 있었다. 가정에서 제품들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면밀히 관찰해보면, 사람들은 제품들이 본인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킬 때까지 계속해서 조정하고 재배치한다는 것이다.

더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는 나의 의견이 서구 사회에 살며 과학과 비즈니스 교육을 받아온 필자 개인의 배경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François Nsenga는 길고 깊이있는 내용의 글을 통해, 내가 자라온 환경과 교육, 전문적인 경험, 그리고 사회생활 등이 나의 사고방식을 결정했고, 그것이 나로 하여금 문제에 대한 문화적 현실을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고 이야기 했다. 다른 문화권에서 자라온 사람은 같은 현상을 매우 다르게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 비평글은 ‘인공물들의 균일화가 개인 또는 지역, 더 나아가 세계에 정확히 얼마만큼의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해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다시 말해서 문화적 다양성의 손실은 생물학적 다양성의 손실과도 견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결론

대량 생산 제품과 산업 디자인 교육의 문화적 다양성 결핍에 대한 나의 의견은 변함 없으나, 두 가지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첫 번째는 서로 다른 문화들을 아우르는 표준화가 분명히 가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서로 더 쉽게 교감하고 소통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것은 기술, 산업화, 그리고 미래에 대한 서구적이고 기술적인 관점이다.

두 번째 해석은 이런 문화적 균일화는 파괴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삶의 풍요로움, 역사와 의식, 풍습의 중요성을 훼손한다. 문화적 다양성은 강력하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책임의식 있는 디자이너로서 사람들이 그들이 속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문화적 다양성의 풍요로움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디자인 교육이 국가를 막론하고 비슷한 이유는 어쩌면 많은 디자인학과 교수들의 출신이 몇몇의 특정 대학으로 국한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교육방식은 비슷한 디자인 철학을 가진, 그리고 서구적 문화와 대량 생산 체제에 크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과, 대형 에이전시들의 요구사항에 맞춰져 있는 ‘특정 디자인 교육 체계’를 따르고 있다. 이 현상은 PhD 단계에서 특히나 더 심각한 데, 이유는 아마도 디자인 관련 PhD 과정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대량생산, 산업 디자인을 공예로부터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공예는 수백 수천 년에 걸친 문화와 행동양식을 반영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장인들이 만들어낸 제품들은 문화적인 요구와 들어맞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인도 National Institute of Design in Ahmedabad의 Ranjan 교수가 쓴 경이로운 책 Crafts of India의 부제 ‘Handmade in India’는 이 차이점이 존재하는 이유를 암시한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Handmade’(수공의)다. 수공예품에는 대부분 그것을 직접 만든 사람의 요구가 반영되어 있다. 반면 대량 생산된 제품들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로부터 사용될 목적으로 제작된다.

하지만 단지 디자인 교육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그 결과물까지 반드시 비슷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오늘날의 디자인 교육이 강조하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하는 디자인의 필요성이다. 학생들이 관찰 기술, 디자인 리서치 방법론, 신속한 프로토타이핑과 정제 기술 등을 교육받는 사례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수천 년에 걸친 수공예로부터의 발전된 형태로 고려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방법들은 결국 문화적 다양성과 인간의 요구에 대한 감각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본 에세이의 내용이 특별히 산업, 인터랙션 디자이너들에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참고했으면 한다. 대량 생산 제품의 영역에서는 문화의 영향이 미미할지 모르나, 다른 영역의 디자인이 문화로부터 받는 영향은 훨씬 더 클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적 교감은 여전히 문화적 다양성의 근원지이고, 서비스 디자인은 이런 개별 문화를 적극적으로 고려해 다양화하도록 기대되기 때문이다. 의사소통과 인터넷의 영역 역시도 소셜네트워크의 부상과 함께 문화적으로 다양화 될 것이며, 다른 영역의 디자인들도 개별적으로 특화된 문화적 감각을 갖게 될 것이다.

끝으로 나의 의견 중 얼마만큼이 나 개인의 문화적 편견으로부터 기인한 것일지 스스로 묻고 싶다. 나는 서구 사회에서 기술과 과학에 집중된 교육을 받아왔고, 메이저 대학들의 심리학, 인지과학, 전자 공학, 컴퓨터 과학, 그리고 산업 디자인 등의 학부에서 교수직을 맡아왔으며, 실무적인 경험으로는 세계적인 전자제품 회사에서 중역을 맡기도 했었다. 만약 나와 전혀 다른 경험을 쌓고 다른 교육을 받아온 사람이 있다면, 과연 이 글과 동일한 결론에 도달할까?

시작과 동일한 질문으로 이 에세이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제품 디자인은 문화로부터 얼마만큼의 영향을 받아야 할까?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