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노동자의 자기비판

‘우리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

들을 때마다 불편했던 말이다. 소프트웨어로 큰돈을 벌어보려는 기업가들이 언젠가부터 줄곧 외쳐댔다. 목숨을 걸고 인명을 구하는 소방관도, 질병과 죽음에 맞서는 의사들도 좀처럼 꺼내지 않는 그 말을, 메시지 앱이나 클라우드 서비스 만드는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내뱉었다.

직업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오히려 내가 느꼈던 불편함의 기저에는 사용자의 경험을 개선하고 커다란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이들이 엑시트를 통해 큰돈을 거머쥐고는 유유히 사라지던 모습과 잠시나마 본받고 싶었던 그들의 소명의식도 결국은 탐욕을 정당화하기 위한 자기최면에 불과했다는 착잡한 깨달음이 깔려 있었으리라.

기술이 세상을 바꾸고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리라 믿었던 마음 이면엔, 내가 속한 이 작고 편협한 분야가 세상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다면 나의 노동 역시 단순히 생계수단 이상의 어떤 가치를 갖게 되어 세상으로부터 비교적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비겁한 기대도 있었다. 명백히 기술이상주의자였던 시기엔 오히려 세상의 크고 작은 문제와 그것을 마주한 해결책이 간단히 구분되었고, 그 해결책들이란 거의 언제나 새로운 기술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기술에 대한 나의 신뢰는 사회의 복잡도에 압도되었고, 모든 약에 부작용이 존재하듯 우리가 해결책이라고 내놓는 것들이 항상 의도치 않은 다른 변화 역시 초래한다는 것을 깨달은 후엔, 심지어 문제와 해결책의 경계선마저도 흐릿해져 버렸다.

다행히 나는 디지털이 일상의 대부분을 집어삼키기 전에 태어났기에 그것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켰는지 똑똑히 지켜봐 왔다. 고유의 목적을 가졌던 사물들이 모두 픽셀로 변환되어 하나의 기기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편의성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포기하는지도 모른 채 무차별적으로 강요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받아들여야 했고, 디지털이 해소한 비효율의 무게만큼 한편으로 우리는 그것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제 정보는 모든 곳에 존재하며 우리가 스스로 답을 찾아갈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정보의 접근성이 높아지면 모두가 더 현명해지리라 기대했건만, 정보가 판을 치자 지식은 더욱 찾기 어려워졌고 지혜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웹의 태동을 지켜보며 거대한 도서관을 꿈꿨던 나에게 현실이 되어 나타난 건 사방에서 관심을 갈구하는 폐기물로 가득한 쓰레기장이었다. 결국, 사서가 되고 싶었던 나는 책이 아닌 폐품을 정리하는 작업에 몰두하게 된 것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픽셀만 쳐다보며 일해야 하는 디지털 기술노동자에게 현실감각을 유지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운 난제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너무 쉽게 문제를 정의내리고는 기술 안에서만 해결책을 찾으려 서성인다. 그리고 목적의 담대함보다 오히려 프로세스의 정교함에 매료되며, 문제를 직접 겪는 당사자의 삶과 그들이 속한 사회의 복잡도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그저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증명할만한 데이터 하나만 얻을 수 있다면 그것에 만족해 자축하고 결과를 예쁘게 포장해 홍보한다. 그 하나의 데이터 마저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실패를 포장해 자축할 것이다.

우리의 업무가 효율을 갈구하는 것으로 시작해 기어코 이뤄 낸 효율성 증대를 자축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우리는 그 효율이 창출해 낸 이익이 누구의 주머니로 들어갔으며, 그 효율이 누구의 직업 안정성을 침해했는지 알지 못한 채, 아니면 모른 척 한 채 이 일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이기심은 필연적 후회의 시점을 우리 자신의 직업이 사라지는 날까지 미뤄 줄 수 있을지 모르나, 그 시점 자체는 오히려 앞당기는 역설을 낳게 될 것이다.